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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공부 이야기

섣부른 '웹 2.0 마케팅'이 회사 잡는다 - 소비자 참여 앞서 '기업 가치' 공유하라

플랜인 2008. 8. 29. 19:45
[IGM과 함꼐하는 케이스 스터디]
섣부른 '웹 2.0 (참여·공유·개방 중시 새 인터넷 조류) 마케팅'이 회사 잡는다
소비자 참여 앞서 '기업 가치' 공유하라

 

Q 금요일 저녁이다. 퇴근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지만, 요즘 들어 그런 일은 나전략 상무에게 먼 남의 나라 일만 같다. "이게 다 그 미친 UCC(user-created contents·사용자 제작 콘텐츠) 때문이야." 나 상무는 생각할수록 한숨이 난다. 의욕적으로 시도한 새로운 마케팅 캠페인이 갈수록 꼬여가기 때문이다.

나 상무가 몸담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 'SM(Special Motors)'은 3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최첨단 SUV(지프형 차) 모델인 'Z'를 최근 출시했다. 사실 SM은 세단 형태의 자동차를 주로 판매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Z'는 기존의 SUV보다 힘이 좋은데다 배기가스 배출도 크게 줄여 경쟁력이 있었다. 시장에서의 반응도 꽤나 좋았다. 광고도 나가지 않았는데, 벌써 주문이 쌓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악몽'은 3주 전쯤 시작됐다. 그날은 'Z'의 광고 시안(試案) 최종 발표회가 있던 날이었다. 광고는 SUV의 특징을 살려 눈으로 뒤덮인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리는 'Z'의 멋진 주행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멋진 경관과 미끄러운 도로에 착 달라붙어 달리는 'Z'의 멋진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탐을 낼 만했다.

하지만 사장님의 반응은 달랐다. "여러분, 너무 상투적이지 않나요? 이제 이렇게 일방적으로 전달만 하는 광고는 달라져야 합니다. 소비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이 말입니다."

이 게 웬 말인가. 사장님은 그날 아침에 '웹(Web) 2.0'에 관한 특강을 듣고 온 길이었다. 웹 2.0이라는 게 무슨 컴퓨터 프로그램 이름인지 알고 있던 사장님은 "웹 2.0은 참여, 공유, 개방의 정신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철학의 변화"라는 강연에 깊은 감명을 받은 눈치였다.

"나 상무, 저 광고에서 소비자가 참여할 공간이 있습니까? 저 광고를 보고 자기들끼리 대화의 화제로 올릴까요? 우리는 소비자를 위해 무엇을 개방했나요? 만약 아니라면 다시 생각해 보세요. 기한은 1주일입니다."

내 심 칭찬을 기대하다 뜻밖의 질책을 받고서 씩씩대며 자리로 돌아온 나 상무, 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 의견을 내보라고 팀원들을 독촉했다. 팀원들이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대대적인 시승 행사나 경품 이벤트 같은 전통적 '참여' 아이디어만 무성했다.

그때,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던 최천재 대리가 말문을 열었다. "요즘은 사실 UCC가 대세입니다. 젊은 친구들, 얼마나 동영상을 잘 찍습니까? 그들이 우리 'Z'에 대한 광고를 직접 찍게 하고, 그걸 광고로 내보내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그러자 김전통 팀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것 봐, 최 대리. 자동차 광고의 핵심은 멋진 영상이야. 일반인이 그런 영상을 어떻게 찍나? 참 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도대체 생각이 없어요, 생각이."

바로 이때, 나 전략 상무는 무릎을 쳤다. 두 사람의 공방을 듣다가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 여러분, 그럼 말이에요. 우리가 찍은 CF 동영상을 아주 짧은 비디오 클립 형태로 잘라서 올리고, 이걸 소비자들이 마음대로 편집하게 하면 어떨까? 멋지게 편집을 하는 사람에게는 상금도 주고, 그걸 다시 TV 광고로 채택하는 거야. 자막도, 음악도 소비자가 달게 하는 거지. 어떤 것 같나?"

나 상무의 의견은 바로 채택됐다. 사장님 역시 "멋진 아이디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SM사의 홈페이지에는 'Z' 모델에 대한 UCC를 직접 편집할 수 있도록 비디오 클립과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2 주의 준비를 거쳐 드디어 UCC 캠페인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많은 캠페인을 한 백전노장의 나 상무였지만, 정말이지 이번만큼은 긴장됐다. 귀가 후 가까스로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떨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맨 처음 UCC 아이디어를 냈던 최천재 대리였다.

"상무님, 난리가 났습니다. UCC가 올라오고 있긴 한데…. 이건 아주 끔찍해요. 죄다 욕으로 자막을 달았습니다. 특히 SUV 차량이 대기 환경을 오염시키고, 멋진 산을 온통 망쳐버릴 거라고 우리 회사를 비난해요. 아, 이건 최악입니다"

나 상무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A 최근 들어 기업들은 제품 제작 단계에서부터 소비자를 참여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쏟아 붓는 매스 마케팅(mass marketing)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기 때문이다. 똑똑해진 소비자는 블로그(Blog)와 UCC로 무장하고 자신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내고, 다른 사람의 추천 혹은 비(非) 추천 의견을 참조해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일방적으로 소비자에게 우리 제품이 좋다고 떠드는 방식은 이미 유효기간이 끝났다. 오히려 소비자가 아무런 부담감 없이 뛰어 놀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멍석을 누가 더 잘 만들어 소비자를 놀게 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21세기 기업에 필요한 능력이다. 기업이 소비자 참여를 유도할 때 성공을 위한 첫째 조건은 소비자에게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줌으로써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SM의 UCC 동영상 공모전은 흠잡을 데가 없다. 기존에 찍은 광고를 비디오클립 형태로 나누어 소비자가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고, 소비자에게 광고의 편집 권한을 부여한 것 역시 좋은 시도였다.

문제는 둘째 조건에 있었다. 즉 기업이 소비자 참여를 유도할 때는 소비자가 기업이 의도하는 가치나 철학에 공감하게 해야 하는데, SM은 여기에 실패했다.

■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표방해야

경영학 전문 용어로 말하자면 소비자들에게 '가치 우산(value umbrella)'을 씌우지 못한 것이다. 한 우산 속에 들어온 여러 사람이 비를 피한다는 가치를 공유하는 것처럼 기업과 소비자는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섣부른 소비자 참여 시도는 회사의 의도와는 전혀 뜻밖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SM의 실패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됐다. 문제는 신형 SUV가 표방하는 가치에 대해 소비자들이 공감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SM은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 했나? 무엇보다 공모전이 표방하는 주제를 명확히 했어야 한다. 성공한 기업들은 '가치 우산'을 씌우기에 적절한 주제를 소비자 참여 캠페인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때 가치는 환경이나 사회 공헌, 혹은 재미가 될 수도 있다. 브랜드가 표방하는 이미지가 매우 강력할 경우에는 그것 자체를 가치 우산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SM의 UCC 공모전은 소비자에게 전달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출발했다.

139년 전통의 미국 식품회사 하인즈(Heinz)도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다. 하인즈는 지난해 대대적인 UCC 동영상 공모전을 개최했다. 자신들의 전통, 즉 오래되고 진한 토마토 케첩의 이미지를 잘 살리면서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 하인즈가 내세운 가치였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 가치 우산 속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했다. 전통을 나타내라고 했더니 어떤 소비자는 히틀러 사진 옆에 하인즈 케첩을 올려놓은 UCC 동영상을 올렸다. 재미를 살리라고 했더니 피 대신 토마토 케첩을 사용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의 그 유명한 샤워실 살해 장면을 패러디한 동영상도 나왔다. 이런 동영상들은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하인즈 브랜드는 큰 타격을 입었고, 매출도 감소했다.

SM사의 경우 제품 자체를 UCC 공모전의 핵심 가치로 삼았다면, 공모전을 진행하기에 앞서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제품의 강점에 대한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어야 했다. 케이스를 보면 신형 SUV는 다른 회사의 제품보다 분명 더 환경 친화적이었고, 환경 문제는 소비자 참여 캠페인에 매우 적합한 주제였다. 그런데도 SM사는 사전에 소비자들에게 환경 친화적인 신형 SUV의 가치를 충분히 알리지 못했다.

만약 이런 사전 작업이 충분히 이뤄진 후에 공모전을 진행했더라면 'Z'가 환경을 파괴하는 제품이라고 비판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령 일부가 공격할지라도 '친환경 SUV'라는 가치를 공유한 다른 대다수 소비자가 SM사의 편이 되어 그 공격을 충분히 막았을 것이다.

■ NEC는 어떻게 성공했나?

SM 사의 간부들은 소비자 참여 캠페인에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꼽히는 일본의 세계적 전자 회사 NEC의 사례를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통신기기와 집적회로 분야의 강자인 이 회사는 지구 온난화 방지를 모토로 내걸고 1995년부터 호주 남단에 있는 캥거루 섬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2002년까지 심은 나무만 해도 55만 그루에 달했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그들의 사회 공헌 활동은 사람들에게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고민하던 NEC는 자신들의 캠페인이 너무 일방적인 20세기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웹 2.0의 기본 이념인 참여, 공유, 개방의 정신을 자신들의 캠페인에 도입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결과가 바로 온라인 공간에서 가상의 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에코토노하(ecotonoha)' 캠페인이었다. 이 캠페인의 핵심은 캥거루 섬에 나무를 몇 그루 심을 것인가에 대한 결정 권한을 NEC가 아닌 소비자에게 준다는 것이다.

프로세스 는 이렇다. NEC가 만들어 놓은 온라인 가상 공간인 에코토노하에 소비자들이 찾아와 간단한 응원의 메시지를 남긴다. 메시지 하나가 각각 나무 이파리 하나가 되고, 이파리 100개가 모이면, NEC는 실제로 한 그루의 나무를 캥거루 섬에 심는다. 완벽한 소비자 권한위임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작은 행동이 지구를 지키는 데 일조한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2003년 이후 NEC는 이 캠페인을 통해 44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다시 말하면, 44만 명이 이 캠페인에 참여했다는 뜻이다. 이 캠페인 덕분에 NEC는 5년 만에 세계 최고의 그린(green) 기업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NEC는 가치 우산을 씌우는 데도 성공적이었다. '환경'이라는 가치, 지구를 지킨다는 가치는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실제 이 캠페인에 참여한 네티즌들은 누구나 아름다운 말을 남긴다. 욕설이나 장난도 없다. 누구나 NEC가 내세운 가치 우산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도 아주 기꺼이.

■'가치'는 반드시 고상할 필요는 없다

이때 가치가 반드시 형이상학적인 것일 필요는 없다. 미국의 껌 회사인 스트라이드(Stride) 사의 '매트(Matt)는 대체 어디 있는 거야?'란 캠페인은 자유분방함과 괴짜스러움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주 고객인 10대와 20대를 염두에 둔 가치이다.

그 들이 만든 동영상 광고의 주인공인 매트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세계 여행을 떠난 청년이다. 매트는 스트라이드의 후원으로 14개월 동안 42개국을 여행하며 각 나라를 대표하는 장소에서 늘 자신만의 독특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춤을 춘다. 현지 주민들도 그와 함께 어울려 흥겹게 몸을 흔든다. 사람들은 매트의 자유분방함과 괴짜스러움을 사랑한다. 매트의 춤 동영상은 유튜브에 올라와 폭발적 조회수를 기록한다. 재미있는 점은 매트의 동영상 가운데 스트라이드가 나타나는 부분은 무척 짧다는 것이다. 동영상의 엔딩 장면에 자신이 여행 중에 만난 고마운 사람의 이름이 다 올라가고 나서야, 다음과 같은 한 문장이 뜬다. '그리고 스트라이드에게도 좀 고마워.'

매트의 UCC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자유와 괴짜스러움을 느끼고, 스트라이드를 떠올린다. 사람들은 스트라이드의 가치 우산 아래에 있다. 만약 스트라이드가 UCC 공모전을 한다면, SM이나 하인즈와는 다른 결론이 날 것이다.

이처럼 캠페인의 가치가 분명할수록 소비자와 기업 간에는 강력한 동질감이 형성되고, 캠페인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웹 2.0의 콘셉트를 활용한 소비자와의 동행(同行)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소비자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섣불리 웹 2.0이라는 명목 하에 소비자들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기업이 꿈꾸는 장밋빛 미래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는 항상 기업보다 똑똑하다.


..기사출처: 조선일보 위클리비즈(2008.08.23~24)